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5학년 여름방학 :: 남겨진 사람들

* 본 내용은 가족의 사망과 과도한 훈육(폭력과 언급)이 있습니다. 시청에 주의해 주세요.

 

 

 

 

 

 

 

 

 

잿빛의 저택에서 그나마 색이 입혀진 방은 아모르 그레이가 지내는 이 방뿐이다. 엄격한 스케마 그레이는 사랑하던 이가 남기고 간 막내 아이를 무엇보다 아꼈기에 아모르를 위해서라면 강박처럼 지켜오던 규칙 몇 가지쯤은 새로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아끼는 아이더라고 가주인 자신이 직접 돌보지는 않았다. 조금 너그러워진 사고방식으로도 아이를 가주인 자신이 돌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2살의 아기를 돌보는 것은 결국, 막 충격에서 벗어난 장남 리베르타스의 몫이었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3일간 앓아누워있는 동안 동생인 코스모스가 아모르 돌보기와 어머니 방 정리를 동시에 했으니. 일어나자마자 원래 자신의 일인 동생 돌보기를 받아온 참이었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던 동생이 떠올라 아기가 앞에 있는 것도 까먹고 한숨을 쉬었다.

“괜찮겠어? 조금 더 쉬어도 괜찮아 형.”

“괜찮아. 너야말로 못 쉬었잖니. 개학까지 조금 쉬렴. 너도 힘들잖니.”

“에이~ 힘들긴. 지금 아니면 언제 내가 아모르랑 둘이 있겠어.”

자신은 어머니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해 놓고 장난스럽게 구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아무리 쉬라고해도 괜찮다며 웃어 보이던 코스모스는 아직 정리할 게 많다며, 어머니의 방으로 가버렸다. 리베르타스는 코스모스가 자신을 점점 의지하지 않는 모습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어릴 때,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걸 놔두지 말 걸 그랬나. 옆에서 칭얼거리는 아모르를 토닥거리고 있으니, 리베르타스의 머리에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아모르가 완전히 잠들면 1시간은 안 일어날 거니까. 그동안 코스모스와 대화 좀 해야겠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서 노력한 지 10분. 드디어 아모르는 잠투정을 끝내고 잠이 들었다. 능숙하게 아이를 두고 방을 빠져나와 코스모스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 도련님! 주인님이 부르셔요.”

“아버지가?”

“네. 급하게 찾고 계셔요.”

“... 하... 알겠어.”

집요정 잭에게 아버지가 찾는다는 말에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보통 이렇게 리베르타스를 찾는 경우는 코스모스를 호출할 때가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코스는 조용하게 지냈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이제 3일밖에 안 지났다.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내는 게 코스모스 아니던가. 어머니가 하던 일들을 잭과 나누어 처리하고 있는 게 코스모스였다. 거기에 아버지가 시켜놓은 것까지 착실히 수행하고는 있는데..... 아모르의 유모 때문에 부르신 건가. 슬슬 구하신다고 하셨지. 어느새 도착한 아버지의 집무실 문을 보며, 리베르타스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고는 문을 열었다. 거만하게 의자에 앉아 문을 노려보던 스케마 그레이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오는 아들에게 노트를 하나 내밀었다.

“리베르타스 이게 뭔지 아나?”

문을 열고 들어간 아들에게 정겨운 인사 없이 본론부터 꺼내는 자신의 아버지 손에 들린 노트를 보고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저 물건을 모를 리가. 손을 많이 타 낡았지만 누가 봐도 소중하게 관리된 검은 표지의 노트. 이름 하나 쓰여있지 않았지만 그게 누구의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코스모스의 그림 노트. 코스모스가 아버지에게 절대 들키지 않으려 하는 물건이자. 유일하게 자신에게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물건이 아버지의 손에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이미 다 알고 계시는구나. 뭐라 답을 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게 아버지의 손에 있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돌려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떡해?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쓰잘머리 없는 짓을 한 것도 모자라 편지까지 끼워놨더군. 리베르타스. 코스모스가 하등 한 것들이랑 어울리는 거 같던데? 너는 뭐 한 거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의 연속이었다. 코스모스는 그레이가 사람치고는 자유로웠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들키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해 봐야 하는 게 코스모스였다. 머글 혈통과 어울리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호그와트에서의 일은 아버지가 전부 알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서 혈통과 상관없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었다. 하지만 결국 숨기던 것들이 전부 가장 들키면 안 되는 이에게 도달해 버렸다. 이번에는 잔소리만으로 안 끝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코스모스를 위해서는 지금 아버지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리베르타스는 아버지에게 거역하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리베르타스는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리베르타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 아는구나. 그럼 네가 해야 할 일도 알겠지? 네가 바로잡아라.”

툭. 노트가 리베르타스의 발 앞에 떨어졌다. 이걸 주워서 코스에게 돌려주고 타이르면 될 거야.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르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스모스는 불러놨다. 조금 있으면 오겠지. 네가 찢어라. 코스모스의 눈앞에서. 코스모스가 잘못한 건 네가 옆에서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네가 책임지고 바로잡아.”

..... 심장이 아파 올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리베르타스는 코스모스가 이 노트를 무엇보다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여기에는 어머니도 그려져 있었다. 또다시 어머니를 코스모스에게서 빼앗으라니 아무리 리베르타스여도 이번만큼은 아버지를 따를 수 없었다.

“안.. 됩니다.”

“뭐?”

“안됩니다.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잘못한 것들은 어떻게라도 고쳐놓겠습니다. 그러니 이 노트만큼은 코스에게 돌려주십시오. 아버지.”

떨리던 목소리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처음으로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했다. 순종적이던 장남의 첫 번째 성장을 마주한 아버지는 차갑게 웃었다. 처음은 하는 이에게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받는 이에게 처음만큼 꺾기 쉬운 건 없었다. 쾅! 핏발까지 서 책상을 내리친 아버지를 보며 놀란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에게 혼나러 간 코스모스를 기다리면서 자주 듣던 소리 아니던가. 저러고 나서 화를 내시면 보내주실 거다. 분명 그래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레이 가문의 가주는 강박처럼 지켜오던 규칙 몇 가지쯤은 새로 쓰는 사람이 되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새로운 규칙은 두 아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쨍그랑!

어깨를 타격하는 통증과 날카롭게 울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아버지의 잔소리 대신 방을 채웠다. 그리고 아버지의 책상 위에 있던 유리로 만들어진 재떨이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리베르타스의 어깨를 맞추고 바닥으로 떨어져 유리 조각으로 부서졌다.

“미꾸라지 하나가 기어코 연못을 망치는구나. 코스모스 그놈의 영향이겠지. 썩 꺼져라.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그놈의 버릇을 고쳐놓을 것이니까.”

어깨를 강타한 통증과 들어본 적 없는 호통이 리베르타스를 억압했다. 리베르타스가 더 이상 그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도망치듯 방에서 빠져나온 리베르타스는 어머니의 방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스모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노크도 없이 연 방문 너머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길이 엇갈렸다. 돌아간다 해도 코스모스는 이미 아버지의 방 안에 있을 거다.... 힘겹게 다시 아버지의 방앞에 도달했을 때 들린 것은 타격음이었다. 아버지가 코스모스를 때리는 건가...? 불안한 마음에 문 손잡이를 잡으려 했으나, 이어서 들려오는 분노에 찬 아버지의 목소리와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손잡이를 잡았던 손이 얼어붙었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쨍그랑거리며 깨지는 소리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말려야 할까... 코스모스가 잘못한 일이잖아.


... 말려야할까... 코스모스가 잘못한 일이잖아.

 그래 이건.... 언젠가 코스모스에게 필요한 일이었어. 

 

최근에 호그와트에서 일어나던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 쓰고 있었잖아. 이번에 아버지가 잘 타이르시면 앞으로는 그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코스모스를 위해서는 이게 맞아. 리베르타스는 또다시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착한 동생은 웃으면서 방에서 나와줄 거라고. 리베르타스는 그렇게 생각하면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이곳에서 기다리다 나온 코스모스를 방까지 데리고 가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리베르타스는 아가씨가 일어나셨어요. 라며 찾아온 잭 때문에 코스모스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