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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19세 :: 찢어진 조각

*본 글에는 언쟁, 폭언, 폭력 등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에요.





코스가 사라진 지 벌써 1년하고 1주일이 지났다. 멀쩡했다면 분명 돌아왔을 텐데... 살아..있는 거겠지? 1년간 영국에 모든 곳을 뒤졌는데 아무 곳에서도 코스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이쯤 되니 최악의 가정들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야. 살아있어. 코스가 나를 두고 갈 리가 없잖아.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 작년에 어머니께 내년에는 같이 오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올해도 혼자 가게 생겼네.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속이 쓰렸다. 동생도 제대로 못 지키는 첫째에게 실망하셨으려나... 무거운 걸음을 돌려 어머니의 무덤으로 향했다.



그레이 가문의 사유지는 유독 채도가 낮다. 특별한 마법이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랬다. 어머니의 무덤도 그런 법칙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난히 색이 옅은 풀들이 바람을 따라 살랑거리는 사이로 이질적인 색이 눈에 들어왔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그 머리카락이. 빌어먹을 동생님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건지 모를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왔으면 집부터 올 것이지 여기서 저러고 있다니 참 기가 찼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어이없는 마음에 입에서는 퉁명스러운 말이 먼저 나갔다.



“여기엔 오는 건가.”



빌어먹을 동생님이 흠칫거리더니 뒤를 돌았다.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크게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키도 좀 컸나?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뭐가 불안한 건지 눈이 떨리는 게 보였다. 어머니 앞에서는 신나게 떠들더니 나한테는 인사도 한마디 안 한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어머니의 묘비에 헌화하고는 옆에 서 있던 코스의 손을 잡았다. 잡힌 코스의 손이 맞잡지 않고 꼼지락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놓칠 생각 없었다. 코스 네가 없는 건 1년이면 충분해. 어머니께는 나중에 다시 와서 인사하기로 하고 코스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지?”



코스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향했다. 과거에는 아버지의 방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내가 집무실로 쓰고 있는 방이었다. 방을 들어올 때, 잡고 있는 코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잡은 손에 힘을 줄 뿐 놓아주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한마디도 없는 매정한 동생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래서 네가 1년이나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뭐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코스는 내가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머글... 세계에 있었습니다. ...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요.”



“머글 세계에서? 어디 다쳐서 못 움직이다가 이제야 회복해서 돌아온 게 아니라?”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걱정했는데. 너는 머글들이랑 어울리면서 가족은 내팽개치고 있었다고? 심지어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면서 집에 하다못해 마법 세계에도 얼굴을 안 비췄다고? 의도적으로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었다.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1년을 기다렸던 동생님이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머글과 어울리느라 가족을 방치했다는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



“그놈의 머글... 더러운 물이 묻었어.”



그래 이게 다 머글 놈들 탓이다. 가족밖에 모르던 애를 어떻게 꼬드긴 거지?



“머글들은 죄가 없어요. 형님. 오히려 저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입니다.”



“뭐?”



“그날 저를 구해준 머글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 다시 서 있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야 돌아온 건 제 선택이었어요. 형님.”



처음이었다. 코스가 내 말을 부정해온 건. 잡고 있는 손을 마주 잡아 주지도 않는 동생이 내가 아닌 머글들의 편을 들었다. 지독한 이질감이 몰려왔다. 한 번도 나를 부정하지 않던 동생이 내가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치스러운지도 모르고 머글들이랑 시시덕거리고 다닐 줄이야. 아주 가문의 먹칠이랑 먹칠은 혼자 다 하는구나. 가족은 내팽개치고 지내니 좋았니?”



코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묵묵하게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 충격받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동생님은 또다시 침묵했다.



“넌 변한 게 없군. 모자란 놈”



“너는 중요한 순간에 아무 말도 안 하지. 그래. 그렇게 머글들이 좋으면 그들과 계속 살 것이지 왜 돌아온 거지?”



“네가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걱정했을 가족 따위는 네게 별거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미개한 이들과 어울리더니 뭐가 중요한 건지도 까먹은 거이냐?”



“네가 머글 혈통들과 혼혈과 어울릴 때 잡았어야 했어. 그때 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무책임한 놈.”



1년간 쌓인 울분이 쏟아졌다. 돌아오면 다독여주려고 했던 말들 대신 비난만이 입을 통해서 나왔다. 왜? 너 왜 그렇게 보고 있어? 원래라면 이쯤에서 사과했을 코스가 씁쓸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스는 기어코 맞잡지 않은 손을 내 손에서 빼내었다.



“형님 설령 그때 형님이 제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막으셨어도 결론은 같았을 겁니다. 우리랑 다르다고해서 미개하지 않았어요. 머글도 머글혈통도 혼혈도요.”

“내가 하는 말에 어디서 토를 다는 거지?”



완전히 나를 놓은 듯한 행동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놀라서 동그래진 코스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가고 볼이 붉게 물들었다. 올라간 손은 그대로 굳었다. 내가 무슨 짓을....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시는군요.”



이제껏 단 한 번도 코스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음성이었다. 아무리 타인에게 냉담하게 굴어도 나에게는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아이였는데... 나를 정면으로 보는 코스의 눈이 싸늘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을지언정 온기를 잃지 않던 눈이 싸늘하게 나를 응시했다.



“그래 또 제가 틀렸겠죠. 어리석었겠고요. 그럼 형님이라면 저와는 다른 선택을 하셨겠네요? 그럼 이 멍청한 동생에게 보여주면 되겠네요.”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에 그 방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누구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