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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로그 2 :: 변하는게 싫어.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도착해서야 손에 주고 있던 약병의 뚜껑을 열어 금빛의 내용물을 삼킨다. 꿀꺽. 꿀꺽. 목뒤로 넘어가는 기분은 몇 번을 마셔도 좋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뭐든 단번에 들이키는 버릇이 생겨 버렸지. 푸하... 빈 병을 입에서 떼며 엄지로 입술을 닦는다. 이걸로 5병. 남은 물건들의 개수를 세며 내일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준비를 마치면 어느새 돋아난 새살과 흔적 없이 붙은 상처를 확인하고 지팡이를 부려 옷과 머리, 몸의 청결을 유지한다. 좋아. 회복이 끝나면 언제 나의 일과를 시작한다. 이곳에 온 후부터 생겨난 일과를.

이곳은 7년 만에 돌아온 호그와트의 외각 숲 쪽이다.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발이 닿는 대로 걷기 시작한다. 이것이 이곳에 온 후부터 생긴 일과다. 조용히 즐기는 혼자만의 산책 시간. 모든 것이 추억 속의 그대로일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지. 빈 병을 아무렇게나 던지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재학 당시엔 교칙 때문에 보지 못했던 새벽의 풍경, 가끔 보이는 혈흔과 망가진 건물의 잔재들. 거기다 서로 적대시하는 동기들까지 캐롤의 기억 속에 그대로인 것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스스로까지. 말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을 무심코 내뱉는다.

" 변하는 건 싫은데…. 너무 많이 변해버렸어…. "어둠이 집어삼킨 공간에 그것을 들을 이도, 그것에 따질 사람도 없지만 다시금 입을 다문다. 변하는 것은 싫다. 불변이 좋다. 적응해야 하는 것이 싫다. 익숙한 것이 좋다. 기존의 것은 끌어안고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모습은 진부하고 미련스럽기까지 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캐롤은 정말 변하는 게 싫으니까. 스스로는 수없이 변해왔으면서도 타인에게 항상 안정적일 것을 강요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부터 그것을 싫어했더라.

처음으로 떠오를 기억은 아주 어릴 적이었다. 항상 가지고 놀던 인형이 낡았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새로운 인형을 받았을 때였다. '나와 함께 추억을 보낸 인형은 이제 더 없는데, 내가 왜 그것을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라며 저택이 떠나가라 울었었지. 지금도 원래의 것이 갑자기 변한다면 낯섦 때문에 거부감이 들곤 한다.

그다음으로 생각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 너무 빨리 변해버리는 트렌드에 정말 좋은 기획이었고 어렵게 조율을 맞춰 판매만을 앞둔 순간, 바뀌어버린 트렌드에 수요가 급락한 적이 있었지. 그 때문에 전량 리콜해 제대로 된 이윤조차 남기지 못했었다. 그 후 일주일은 비서 언니의 전화도 받지 않고 화풀이를 했었지.


마지막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다. 혈통도, 가문도 이해하지 못했을 어린 시절의 단편 기억.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어머니의 흔적을 쫓아 유모의 품에서 이야기를 듣던 때, 순수혈통 아가씨니, 머글 여자니 하는 소리를 듣고는 멍청하게도 아버지의 앞에서 입을 놀렸었다. 머글여자 때문에 순혈아가씨가 죽었냐고. 가문에 민폐만 끼치는 머글본이라는데 그게 무엇이냐고.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화가 나 계셨던 것과 그 후 저택 어느 곳에서도 어머니의 흔적을 볼 수 없게 되었었다. 이때부터였겠지. 변하는 것이 싫어진 것은 차가워진 아버지. 사라진 흔적, 내 앞에서는 말을 줄이는 사람들.

과거의 기억에서 기어 올라와 다시 호그와트를 본다. 사라진 과거의 잔재들, 서로에게 지팡이를 겨누는 친구들, 제 앞에선 경계하는 사람들. 아하하. 정말이지.

"역시 난 변하는 게 참 싫어."

작게 흥얼거리며 산책을 즐긴다.